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은 늘 감정을 건드린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코코는 조금 특별하다.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멕시코 전통 명절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정작 이 이야기는 죽음보다 기억과 가족, 음악과 꿈, 존재와 잊힘에 대한 이야기다. 코코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연결과 이해의 시간으로 그려내며, 관객의 심장을 차분히 흔든다. 이제, 이 따뜻하고 섬세한 작품을 천천히 들여다보려 한다.
“죽은 자들의 날이 어쩌면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2018년 초, 극장이었다. 포스터 속 해골 캐릭터가 우습게 보여 ‘가벼운 유쾌한 가족영화’쯤으로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코코는 감정적으로 깊은 영화였다.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은 단순한 장례나 추모가 아니다. 오히려 ‘기억 속의 존재’를 되살리는 명절이다. 코코는 이 문화를 바탕으로, 한 소년 미겔이 죽은 자들의 세계에 가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이 영화가 탁월한 건, 죽음을 전혀 두렵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골 캐릭터들은 유쾌하고 따뜻하며,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 한다. 결국 죽음이란 끝이 아닌, 기억이 사라질 때 진정한 이별이 온다는 메시지가 와 닿는다. “죽었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야. 널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넌 존재해.”
음악이 만든 연결, 가족이 회복한 관계
영화 속 미겔은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이지만, 가족은 음악을 철저히 금기시한다. 이유는 조상 중 음악 때문에 가족을 떠난 사람이 있었기 때문. 이 설정은 꽤 묵직하다. 가족은 때로 나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나의 꿈을 꺾기도 한다.
미겔은 조상의 사진에서 단서를 찾아 자신이 유명한 가수의 후손이라 믿고, 죽은 자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단순한 모험이 아닌 감정의 탐험이다.
영화의 후반부, 치매에 걸린 증조할머니 코코 앞에서 미겔이 ‘Remember Me’를 부르던 장면은 픽사의 모든 장면 중 가장 뭉클한 순간일 것이다. 단지 노래가 아니라, 기억을 깨우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왜 이 이야기가 꼭 필요한 이야기인가
지금 이 시대는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누군가와의 관계도, 사랑도, 꿈도, 기억조차도 너무 쉽게 소모된다. 그런 세상에서 코코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잠깐 멈춰서 기억해봐. 누가 널 사랑했는지, 너는 무엇을 좋아했는지.”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도 누군가가 날 기억해주는 한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존재고, 동시에 누군가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기억해줘”라는 말이 가진 울림
코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잊고 있었던 누군가, 어릴 적 함께 웃었던 사람, 혹은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까지. ‘기억’은 우리에게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이다.
그래서 코코가 건네는 ‘Remember Me’는 단순한 가사 이상이다. 그건 ‘내가 살아온 증거’, ‘우리가 연결됐던 흔적’이자 ‘서로가 서로를 놓지 않게 해주는 마음’이다.
코코는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다. 대신 이 영화는 따뜻한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건 억지 감정이 아니라,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주 정직하고 맑은 감정이다.
아직 코코를 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어떤 조각을 다시 꺼내보게 해주는 귀하고 정직한 영화다.